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산주의 유머/북한 (문단 편집) == 친척 == >1999년 [[중국]] [[요녕성]] [[선양시]]에 사는 두 [[조선족]] 가족이 있었다. > >이들은 서로 이웃 사이였는데, 한 쪽은 [[대한민국]]에 친척이 있었고, 다른 한 쪽은 [[북한]]에 친척이 있었다. > >그러다가 이 두 친척이 비슷한 시기에 심양시를 방문하였는데, 이 때 이웃 주민들은 다음과 같이 물어봤다. > >남한에 친척이 있는 이웃에게는 > >'''"이번에는 친척이 [[한강의 기적|무엇을 가져왔는가?]]"''' > >북한에 친척이 있는 이웃에게는 > >'''"이번에는 그들에게 [[고난의 행군|무엇을 손에 쥐어줘서 보내야 하는가?]]"''' > >였다고 한다. ※ [[이제 만나러 갑니다(프로그램)|이만갑]]에도 출연 중인 탈북민 [[박명호]][* 독립영화 [[올드마린보이]]의 주인공이자 실제 스토리의 인물이기도 하다.]에 따르면, 농담조로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[[북한]] 주민 내에서 돌았던 이야기라고 한다. 이는 90년대 당시의 시대상에서 이해해야 하는 이야기인데, 201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[[조선족]]에 대한 감정이 몹시 나빠진 것과는 달리 90년대 당시에는 민족주의적 정서에 기반한 우호적 감정이 상당히 강했다. 또한 그 당시는 [[중국]]의 1인당 GDP가 1,000달러 미만으로[* 중국의 1인당 GDP가 1,000달러를 넘은 것은 2001년의 일이다.] 거의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간주될 정도로 가난한 나라였기에 92년 한중수교 이후 직접적인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조선족들을 '오랫동안 만날 수 없던 혈육'이자 '가난한 나라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동포'로 보고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정서가 상당히 강하게 형성된 것이다.[* 물론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갓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어 그럭저럭 선진국 문턱 가까이에 들어선 한국인들이 가지게 된 일종의 인정욕구와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.] ※ 실제로, 당시 조선족 친척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뭔가 선물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고, 이러한 선물이 그 당시 조선족들의 생활수준에서 상당히 큰 가치를 가진 경우도 많았다. 심한 경우, 이전까지 생계를 위해 일하던 노인이 갑자기 일을 나오지 않게 되어 당황한 주변 사람들이 집에 찾아가 보니 집에서 쉬고 있던 노인이 "한국에서 온 친척들이 이것저것 주고 간 것으로 당분간 먹고 살 만 하니,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"고 하여, 이를 들은 사람들이 "아무리 남한 사람이 부자라도 언제까지고 선물을 주지는 않을텐데, 뭘 믿고 저러는지 모르겠다"고 혀를 찼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. ※ 반면에, 북한의 경우는 그나마 경제사정이 좋았을 때는 오히려 중국의 조선족들이 북한 내 친척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지만, 90년대 [[고난의 행군]]으로 북한 경제가 완전히 몰락하면서 도움은커녕 그나마 친척 관계를 챙기려면 조선족 쪽에서 무언가를 챙겨줘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. 이 때문에 조선족들 사이에서는 더 직설적으로 "남한에 친척이 있으면 부자가 되고, 북한에 친척이 있으면 거지가 된다"는 이야기까지 퍼졌다고 할 정도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